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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남긴 동심(動心)
-일본 3.11지진-쓰나미 후의 술회
김인섭
일본 도호쿠(東北) 해저 지진이 발생한 시각은 지난 3월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기상청은 즉시 지진-쓰나미 경보를 내렸다. NHK(日本广播协会)의 헬리콥터는 즉발하여 무지한 쓰나미가 선박,전신주,건물,차량과 가련한 생명들을 싹싹 쓸어가지고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장면을 직사(直寫) 그대로 생중계하였다.
별세계의 누군가가 부리는 횡포가 아닌가!가공할 자연력은 인류 문명의 한계점을 적라라하게 적출(摘出)하였고 인간에게 너는 얼마나 무한소의 미물인가를 알라!는 알음장을 주었다. 사람이 기존의 처세술대로라면 지구상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경종이 아닌지도 모른다.
대해진이 세계 경제에 던진 충격파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급성장으로 GDP(국내총생산치)가 세계 3위로 밀려났지만 경제 강대국의 위치만 확고히 지키고 있는 일본인데 이와 같은 파괴성적 하락 후의 추이를 세계는 불안히 지켜보고 있다.세계화로 급진하는 오늘 한나라의 재난은 즉시 전 지구적 재난으로 일파만파 전해진다는 반증으로도 되는 것이다.
금시초유의 특대 재난을 앞에 두고 한심하게 냉정하고 침착히 대응하는 일본인들의 자태도 강렬히 다가온다.발생 당일 거리로 쏟아져 나온 도쿄 시민들.마치 야간 축구 경기장에서 통터져나오는 관중들로 착각할 정도였으나 뛰고 소리치고 흐느끼거나 울부짖는 누구 하나도 없었다. 경황,혼란,무질서,비통,처참은 재해 현장의 회피부득의 사태이고 맡은 이들의 현지 안내와 구제 호소 등은 우리들에게는 당연히 느껴지는 화면이다. 그러나 이런 장면을 볼 수가 없었다.이보다는 전체 국민의 태연하고 냉정한 모습이고 미리 짜놓은 듯한 하나같은 움직임일 뿐이었다.
나라적 슬픔의 무게도 엄청나다.허나 각자는 자기 몫을 숙명적으로 홀로 삭이며 집단적인 관행에만 절대적으로 동조할 뿐이다. 그들도 비통하고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이 절박하련만 냉정과 체면을 절대 잃지 않는 별간장(別肝腸)들이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스스로 나타내는 자세와 인내,용기에 세계가 감동하고 있다.그 극단적 절제는 감탄을 일으킨다. 세계는 이 특유한 문화를 높은 감도(感度)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이 일본의 숨은 힘이다. 이렇게 존재하는 일본은 자기의 국격과 이미지를 새롭게 드러낸다.남에게 페를 안 끼치고 수치를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관념이 남김없이 작용한다고들 말한다. 절규와 호들갑에 익숙한 우리에게 쇼크가 아닐 수 없다..
완벽한 질서 의식과 배려 정신은 거대한 재앙을 흡수하고 극복하는 일본 국민의 원동력인 듯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차롓걸음은 경이롭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슈퍼마켓에서 장사진을 치지만 누구도 하루만 버틸 최소한의 수량만 잡는 그들,새치기와 사재기는 볼 수도 없거니와 자기의 행위가 이웃에 주는 불편의 유무를 늘 염두에 두고 조심스레 운신한다.도쿄전력이 제한 송전을 하자 피해 지역의 우선 송전을 위하여 시민들은 일제히 자기 집 플러그를 뽑는다. 무료전화 부스앞에서 장사진을 짓고 누구도 간단한 전달과 문의가 있을 뿐 서로 독촉도 조급함도 없다. 긴급 파견된 식수차 앞에서 '조금 더' 말 한 마디도 없다. '나 먼저'란 난리도 없고 다만 옥상에 'SOS'를 써놓고 구조대를 차분히 기다린다. 긴급용 우동 그릇이 앞에 와도 너나없이 뒤로 뒤로의 ‘양보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들의 일매진 행동은 누구의 지휘에 따른 것도 아니고 요란스런 본보기의 선전이나 굉장한 도덕 교육, 이론 교육에 의해 진행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맘속에 심어진 무언가에 의해 재앙이 발생하는 순간에 암묵적인 만민일치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극단적일 정도로 일본인들은 침착했다'고 전했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의 시민 의식은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거듭되는 천재지변과 이름 못할 패전의 재더미속에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에너지원이 바로 누구의 강요도 없고 누구도 예외가 아닌 일본인들의 한결같은 이런 귀태(貴態)가 아닐가?! 국민의 수준은 재난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고들 말한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가난한 나라들도, 일본을 미워하던 나라들도, 무심히 바라보던 나라들도 모두가 재난 속의 일본민을 돕고 위로하기 위해 가슴을 일시에 열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애) 천성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역사적 아픔이 극심하데다 독도 분규로 분노하던 한국인들과 조어도 다툼으로 으르대던 중국인들도 일제히 난민을 위해 도움과 고무를 주며 재난의 땅을 향해 마음과 손길과 발길을 돌리었다. 생명에 대한 자비와 우리는 함께 살아야만 하는 지구촌의 한 식솔이라는 거센 멧세지를 보내주었다. 전쟁 속의 군인들에게 끌려 성노예로서 청춘을 무참히 짓밣히고 치욕으로 얼룩진 가슴을 뿥안고 여생을 살아가는 할머니들도 휄체어를 타고 생명 구호의 진두에 나섰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던 시대는 영영 지났간 것이다. 새로운 문명은 공존공영의 공동체적 시스템에서만 이뤄지고 발전한다는 가시 신호이다. 일본인들은 늘 우리는 길동무도 없는 나라라고 비관해 왔으나 이 참변에서 나의 이웃들은 아픈 상처를 어루쓸어 줄 현량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금번의 대진에서 자연이 인류에게 내린 고지서라면 일본도 누구도 독서(獨棲) 불가능이 아닌 독서 불능이라는 옐로카드(yellow card)였다.사정없는 자연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무가내하임만을 본 것이 아니다.이 땅위의 민족들은 비록 각자의 양식대로 모이고 복잡한 리해관계로 끼리끼리 살다가도 생명의 위협 앞에서는 하나로 뭉치는 괴력을 발견하였다. 이 힘이야말로 인간만세(人間萬世)가 이상향(理想鄕)으로 갈 수 있는 저력인지 싶다. 일본을 강타한 지진이 지구인의 천량(天良)을 불렀듯이 커지기만 하는 재난 속에서의 인류의 유일한 빠짐길은 애타심으로 이어지고,생의 공감과 협력의 지혜에 의해서 구축된 만민 대화합 이외에는 없다는 생각을 날려본다.
오늘 세계인들이 맞선 상대는 지진-쓰나미뿐만 아닌 환경 쓰나미, 금융 쓰나미, 테러 쓰나미,불신 쓰나미,살육지변(殺戮之變) 쓰나미 등의 대적이다.이 난문제를 풀어가는 비결은 돈도 힘도 아니고 일본인들의 신기한 국민성도 아닌, 무아애(無我愛)란 이 보이지 않는 실로 짜여진 글로벌적 철벽 댐(dam)이라는 점을 되풀이하게 된다. 얼기설기 맺혀 있던 원한, 알륵과 갈등이 인명 앞에서는 얼마나 부질없는가 머리를 안 굴릴 수 없다. 바로 생명에 대한 사랑과 공생해야 한다는 이념의 재부활만이 조과지도[調過之道]이다.하물며 이 애정의 유전자가 사람의 가슴마다에 뿌리박고 있는데야.... 이것을 부질없는 과대망상이라 한다면 누구를 인류의 류적(類籍)에서 삭제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오늘, 무량세계의 전민은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지구주의(globalism) 로 요새를 둘러쌓아야만 인간에 덮쳐올 검은 파도를 이겨나고 살아남는다!는 호소를 어쭙짢게 해본다.
※:주
1.조과지도 [調過之道] :살아가는 길.
2.별간장 [別肝腸] :이상한 성격. 또는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
3.인간만세 [人間萬世] :만대나 계속되는 영원한 인간 세상.
4.이상향 [理想鄕]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5.살육지변 [殺戮之變] :사람을 마구 죽이는 변고.
6.천량 [天良] :타고난 착한 마음.
7.옐로카드[yellow card]:축구에서 고의로 반칙한 선수에게 주심이 경고로 보이는 종이 쪽지.(黄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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